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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탄생 110주년에 재조명된 예술가

한국 서양화 선구자 중 한 사람인 백철극(간노미) 화백의 작품세계를 다시 조명하는 회고전이 LA한국문화원에서 열렸다.   이번 회고전에는 백 화백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소나기’와 ‘비’ 연작, ‘예수 얼굴’ 연작을 비롯해서, 1940년도 일본미술가협회 공모전 대상 수상작인 ‘상하이 거리’ 등 24여점의 유화작품과 다양한 드로잉 작품, 생전에 남긴 편지와 사진 등의 자료가 폭넓게 전시되어, 작가의 작품세계와 삶을 다시 살펴보고 평가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했다.   이 회고전은 몇 가지 중요한 관점을 시사한다. 우선은, 올해로 탄생 110주년을 맞은 백간노미 화백의 작품세계와 미술사에서의 위치에 대한 평가이고, 다른 하나는 잊혀진 작가를 재평가하고 조명하는 의미있는 작업을 문화원 같은 공공기관이 주도했다는 점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영원하다”는 말씀이 지금도 진리로 통하는지는 의문이지만 유족이나 사회가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고 갈무리하고 자리매김하지 않으면 예술작품은 영원할 수 없다.     그 과정에서 공공기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고 효과적이다.   백철극(간노미) 화백은 1912년 평안북도 박천 태생으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1934년 일본 도쿄 니혼대학 미술과에 입학하여, 같은 과 동창이며 친구인 김환기 화백과 함께 공부했고, 한국 초창기 서양화 1세대의 한 사람으로 김환기, 유영국, 장욱진, 남관 등의 작가들과 함께 활동했다.   백 화백의 작품들에는 ‘간노미(Gannomi)’라는 서명이 적혀 있는데, 이는 평안도 사투리로 금방 낳은 어린애를 뜻하는 말로, 어머니가 사투리로 정감 있게 불렀던 것을 잊지 못해 평생 즐겨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일본 유학 이후 백간노미 화백은 한국과 중국에서 활동했고, 세계무대를 목표로 캐나다 몬트리올, 파리, 뉴욕, LA 등지로 옮겨 다니며 활발하게 자기 세계를 펼쳤고, 많은 상을 받으며, 관심을 모았다.   1970년 뉴욕 개인전을 시작으로 뉴욕과 파리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며,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한국적 정서의 개성적인 추상화로 주목 받았다.     말년에는 LA에 거주하며 작품활동을 펼치다가 2007년 95세로 세상을 떠났다.   한국 서양화 1세대 선구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지만, 정작 대중이 백 화백의 작품을 만날 기회는 거의 없었다.     최근 들어 조금씩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LA아트페어 등을 통해 유작들이 소개되는 정도였다.     그런 점에서 이번 LA한국문화원의 회고전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를 계기로 본격적 연구가 진행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문화원의 가장 큰 임무는 한국의 우수한 문화를 주류사회에 널리 알리는 일이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현지 문화예술인들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잊혀진 예술가를 발굴해서 재평가하는 작업도 중요할 것이다. 그런 작업을 통해서 한국 문화는 풍성해지고, 한국문화의 세계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에서는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웬만한 대가들은 지자체와 협업으로 개인 미술관을 마련하는 것이 보통이고, 살아 생전에 개인 미술관을 개관하는 작가도 적지 않다.     하지만, 한국문화 세계화의 첨단기지인 해외의 한인사회는 안타깝게도 전혀 그렇지 못하다.   우리 남가주 미술계에도 재조명하고 새롭게 평가해야 할 훌륭한 작가들이 많다. 예를 들어, 한우식, 임규삼, 김순련, 황하진, 한국화가 이명수,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활동한 판화가 배융, 서예가 소지 강창원, 하농 김순욱 등…   우리 사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따스한 손길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장소현 / 미술평론가·시인문화 산책 재조명 예술가 이번 la한국문화원 한국문화 세계화 김환기 화백

2022-06-30

[문화 산책] 녹슨 철조망을 걷어내는 예술

6월 하순이 되면 나도 모르게 한국전쟁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내가 ‘삼팔따라지’의 자식이라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특히 올해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멈추지 않고, 한반도는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상태인데, 북한은 걸핏하면 미사일을 쏴대고, 핵전쟁 운운하는 판이니 한층 더 전쟁과 평화를 깊게 생각하게 된다.   이 무렵이면 흥얼거리는 노래가 김민기의 ‘철망 앞에서’다. “자 총을 내리고 두 손 마주잡고/ 힘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걷어 버려요/ 녹슨 철망을 거두고 마음껏 흘러서 가게.”   내게는 철조망이 분단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핵전쟁을 걱정하는 판에 철조망이라니…그런데도 어쩐지 철조망이 떠오른다. 그래서 얼마 전에 펴낸 내 소설집 제목도 ‘철조망 바이러스’로 했다.   얼마 전에 읽은 강맑실 대표(사계절출판사)의 칼럼이 아프게 떠오른다. ‘이 철조망들을 어찌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이 칼럼은 철새인 기러기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남쪽으로 날아왔다가 가시 박힌 철조망에 걸려 피 흘리며 죽어가는 현장을 생생하게 고발하고, 죄책감으로 가슴이 옥죄어 온다고 말한다.   “차가운 바람에 팔랑이는 깃털만이 주검 대신 연신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연한 혀만 들어 있던 부리는 철조망을 끊으려 얼마나 애를 썼는지 피투성이가 된 채 가시 박힌 철조망을 물고 있었다. 그리고 기러기의 눈물. 모든 게 부질없다는 걸 알아차린 뒤 고통 속에서 흘렸을 기러기의 피 섞인 눈물은 길고 가녀린 고드름이 되어 바람에 흔들렸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철조망은 그렇게 무섭다. 우리 가슴 한 가운데 버티고 서있는 철조망은 더 무섭고 완고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올해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화상연설로 이렇게 호소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음악가들이 방탄복을 입고 병원에서 노래 부르고 있습니다. 폭탄이 남긴 침묵을 당신들의 음악으로 채워주기 바랍니다.”   폭탄이 남긴 침묵을 음악으로 채운다… 눈물 나는 표현이다. 이런 호소에 화답하듯, 지금 세계의 많은 예술가들이 우크라이나를 위해 자신의 위치에서 가능한 다양한 방법으로 전쟁 반대에 앞장서고, 평화를 기원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무자비한 폭격과 민간인 살해, 대량살상무기 사용, 강간, 고문, 부상병과 포로에 대한 적절하지 않은 처우 등… 폐허가 된 도시, 무너져 뼈대만 남은 건물, 피비린내 나는 잿더미 사이에서 울부짖는 어린이들….   그깟 예술작품에 무슨 그렇게 큰 힘이 있느냐고 되묻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예술에는 그런 힘이 있다고 대답하고 싶다. 음악을 비롯한 예술은 성명이나 말보다 훨씬 길고 강하게 영향을 미친다. 예술은 논리를 뛰어넘어 공감시키는 능력이 크다. 그리고 그런 마음들이 모이면 막강한 힘이 된다.   중요한 것은 이런 때일수록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평화를 기원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소설가 무라카미의 말을 곱씹어본다.   “음악에 전쟁을 멈추는 힘은 아마도 없다. 하지만 듣는 사람에게 '전쟁을 멈추지 않으면 안돼'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 예술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총과 칼을 땅바닥에 버리도록 한다.   우리가 지금 새삼스럽게 한국전쟁을 되돌아보는 것은 아픔을 되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극복의 지혜를 찾으려는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이 뜨겁게 하나로 뭉쳐 녹슨 철조망을 걷어내 철새들이 마음껏 오가는 세상을 향해….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 산책 철조망 예술 철조망 바이러스 우크라이나 전쟁 우크라이나 대통령

2022-06-23

[문화 산책] 파더스데이 유감

지난 19일은 ‘아버지의 날(파더스데이)’이다.   아버지날이라? 이런 생뚱맞은 날이 왜 필요한지 잘 모르겠다. 날이 갈수록 처량하게 쪼그라드는 아버지의 신세를 위로하자는 날인가. 어머니날만 요란스럽게 떠드는 것이 미안해서 아버지날도 만들어주자는 갸륵한 생각인가. 그래서 적어도 이날 하루만은 아버지의 존재를 인정하고 대접하겠다는 뜻인가.   하긴 미국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날, 장인·장모의 날 등 무슨 날이 많기는 하다. 이렇게 많은 무슨 날들이 혹시 업자들의 농간으로 만들어진 건 아닌가 하는 심술궂은 생각도 든다. 제대로라면 1년 365일 모두가 어머니날, 아버지날, 어린이날, 부부의 날이어야 맞는 거 아닐까.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다.   사실 아버지의 신세는 어지간히 처량하다. 죽어라 일해서 돈 벌고도, 아내에게 홀대 받고, 자식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아버지가 바로 서야 가정이 산다’는 구호가 좋은 증거다. 그런 구호가 등장하는 세상은 이미 망가진 세상이다. 아비 신세를 비아냥거리는 유머는 또 얼마나 많은가. 외롭고 처량한 아버지들… 중년의 아버지일수록 더 심하다. 자식들은 저 혼자 다 큰 것처럼 제멋대로고 걸핏하면 유창한 본토 영어로 총알처럼 말 대답해대고, 아내는 측은한 눈길로 내려다보며 따따부따 잔소리 쏴대고, 어디 그뿐인가, 하루가 다르게 기운은 떨어지고, 사회에서는 변두리로 밀려나고, 집안에서는 편안하게 엉덩이 붙일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그렇다고 사랑이라도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니 문제다.   그러니 풀밭에 나가 쇠몽둥이 휘두르고, 술에 취해 혀 꼬부라진 소리로 원더풀 원더풀 ‘아빠의 청춘’ 노래나 흥얼거리고…. 화를 풀기 위해 죄 없는 공을 마구 후려치니 제대로 맞을 리도 없다. 골프공도 자존심이 있지, 그런 마음으로 난폭하게 휘두르는 몽둥이에 곱게 맞을 까닭이 없다. 나는 한국 남자들이 골프에 미치는 이유가 외로움과 관계가 깊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자들의 진단에 따르면 한국 특유의 가부장주의 가정에서 아버지가 외로운 건 소통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감정이나 사랑 표현에 대단히 서툰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 거야 드러내 놓고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거 아니냐고 우기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표현 안 하면 모를 미묘한 감정의 흐름이 너무도 많은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 아닌가.   아버지와 자식들이 자상하게 정을 나누지 못하고 데면데면 살다가, 돌아가신 뒤에야 뒤늦게 후회하며 ‘걸걸타령’을 늘어놓는 것이 고작이다. 더 잘해 드릴 걸, 사랑한다고 말할 걸, 이랬으면 좋았을 걸… 아버지 미안해요, 용서하세요, 사랑해요!   “아버지가 마시는 술의 절반은 눈물”이라는 유명한 시 구절도 있다. 김현승 시인이 쓴 ‘아버지의 마음’ 중의 한 구절이다. 생각해보면 처절한 이야기다.   오래전 한국에서는 ‘울고 싶은 남자들’이라는 책이 나왔는데 그 책에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아들아. 나는 너 때문에 울고 싶다. 남자로 산다는 것… 참 힘겨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버지와 아들이 아닌 힘겨운 길을 함께 걸어가는 동지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아버지가 바로 서야 가정이 산다는 말에다 “사랑이 있어야 아버지가 바로 선다”는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이상으로 궁상맞은 글 끝! (아, 오해 마시기를 나는 아이들로부터 존경받는 행복한 아버지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 산책 파더스 유감 어머니날 아버지날 할아버지 할머니날 사실 아버지

2022-06-22

[문화 산책] 파더스데이 유감

미국에서는 6월 세번째 일요일이 ‘아버지의 날(파더스데이)’이다.   아버지날이라? 이런 생뚱맞은 날이 왜 필요한지 잘 모르겠다. 날이 갈수록 처량하게 쪼그라드는 아버지의 신세를 위로하자는 날인가. 어머니날만 요란스럽게 떠드는 것이 미안해서 아버지날도 만들어주자는 갸륵한 생각인가. 그래서 적어도 이날 하루만은 아버지의 존재를 인정하고 대접하겠다는 뜻인가.   하긴 미국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날, 장인·장모의 날 등 무슨 날이 많기는 하다. 이렇게 많은 무슨 날들이 혹시 업자들의 농간으로 만들어진 건 아닌가 하는 심술궂은 생각도 든다. 제대로라면 1년 365일 모두가 어머니날, 아버지날, 어린이날, 부부의 날이어야 맞는 거 아닐까.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다.   사실 아버지의 신세는 어지간히 처량하다. 죽어라 일해서 돈 벌고도, 아내에게 홀대 받고, 자식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아버지가 바로 서야 가정이 산다’는 구호가 좋은 증거다. 그런 구호가 등장하는 세상은 이미 망가진 세상이다. 아비 신세를 비아냥거리는 유머는 또 얼마나 많은가. 외롭고 처량한 아버지들… 중년의 아버지일수록 더 심하다. 자식들은 저 혼자 다 큰 것처럼 제멋대로고 걸핏하면 유창한 본토 영어로 총알처럼 말 대답해대고, 아내는 측은한 눈길로 내려다보며 따따부따 잔소리 쏴대고,   어디 그뿐인가, 하루가 다르게 기운은 떨어지고, 사회에서는 변두리로 밀려나고, 집안에서는 편안하게 엉덩이 붙일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그렇다고 사랑이라도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니 문제다.   그러니 풀밭에 나가 쇠몽둥이 휘두르고, 술에 취해 혀 꼬부라진 소리로 원더풀 원더풀 ‘아빠의 청춘’ 노래나 흥얼거리고…. 화를 풀기 위해 죄 없는 공을 마구 후려치니 제대로 맞을 리도 없다. 골프공도 자존심이 있지, 그런 마음으로 난폭하게 휘두르는 몽둥이에 곱게 맞을 까닭이 없다. 나는 한국 남자들이 골프에 미치는 이유가 외로움과 관계가 깊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자들의 진단에 따르면 한국 특유의 가부장주의 가정에서 아버지가 외로운 건 소통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감정이나 사랑 표현에 대단히 서툰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 거야 드러내 놓고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거 아니냐고 우기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표현 안 하면 모를 미묘한 감정의 흐름이 너무도 많은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 아닌가.   아버지와 자식들이 자상하게 정을 나누지 못하고 데면데면 살다가, 돌아가신 뒤에야 뒤늦게 후회하며 ‘걸걸타령’을 늘어놓는 것이 고작이다. 더 잘해 드릴 걸, 사랑한다고 말할 걸, 이랬으면 좋았을 걸… 아버지 미안해요, 용서하세요, 사랑해요!   “아버지가 마시는 술의 절반은 눈물”이라는 유명한 시 구절도 있다. 김현승 시인이 쓴 ‘아버지의 마음’ 중의 한 구절이다. 생각해보면 처절한 이야기다.   오래전 한국에서는 ‘울고 싶은 남자들’이라는 책이 나왔는데 그 책에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아들아. 나는 너 때문에 울고 싶다. 남자로 산다는 것… 참 힘겨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버지와 아들이 아닌 힘겨운 길을 함께 걸어가는 동지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아버지가 바로 서야 가정이 산다는 말에다 “사랑이 있어야 아버지가 바로 선다”는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이상으로 궁상맞은 글 끝! (아, 오해 마시기를 나는 아이들로부터 존경받는 행복한 아버지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 산책 파더스 유감 어머니날 아버지날 할아버지 할머니날 사실 아버지

2022-06-16

[문화 산책] 나이를 이겨낸 열정

 원로화가 장정자 화백의 개인전이 잔잔한 화제가 되었다. 평생 그림을 그렸는데 80대 중반의 나이에 이르러 비로소 첫 개인전을 열었다는 점에서도 관심을 모았고, 전시장을 가득 채운 검은색 위주의 그림들이 내뿜는 곰삭은 연륜의 향기와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도 높이 평가할 만했다.   이번 장정자 개인전은 나이 탓하며 의욕을 잃어버린 노년층에 용기를 주었고, 타성에 젖어 게을러진 후배 작가들에게는 따끔한 자극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우리 미주한인 예술계의 고질적 문제인 고령화에도 작은 희망이 되었을 것으로 믿는다.   날이 갈수록 노령화되어가는 미주한인 예술계의 현실에서 90대의 고령에도 나이의 한계를 극복하고 부지런히 시를 써서 발표하는 박복수 시인이나 80대 중반의 나이에 미주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하고 첫 소설집을 펴낸 민원식 작가 같은 분들은 큰 힘이 된다. 그밖에도 나이를 잊고 열심히 활동하는 많은 노익장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물론 이 같은 원숙하게 농익은 열정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몸과 마음과 정신이 모두 건강해야 비로소 가능하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해보지도 않고 “이 나이에 뭘 하랴?”고 퍼질러 앉아버리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나이 먹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반드시 있는 법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과감한 변신이 어려워진다. 나이를 먹을수록 겁이 많아지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관성(慣性)이 강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습관으로 작품을 하는 ‘언어 기능공’이나 ‘조형 기능공’으로 전락하기 쉽다.   어느 분야나 비슷한데 일단 자기 작품 세계를 인정받고, 어느 정도 명성이 생기면 그에 알맞은 성공이 보장되고, “아무개 작가는 어떠어떠한 작품을 한다”라는 식의 틀이 만들어진다. 그걸 ‘개성’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고 거기에 안주하게 된다. 그리고 매너리즘이라는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된다.   물론 예외도 있다. 말년에 과감하게 변신하여 멋지게 성공한 작가들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김환기 화백의 대표작인 전면 점화(點畵)는 생애 마지막 몇 년 뉴욕에서 활동할 때 피어났다.   박생광(1904~1985년) 화백 같은 작가도 좋은 예다. 내고(乃古) 박생광 화백은 한국현대미술사의 새롭고도 독창적인 장르를 구축해낸, 수묵채색화의 거장으로 평가 받고 있고,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작가다.   그런데 이런 성취가 생애 마지막 8년 동안의 놀랍고도 대담한 예술적 변신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일본에서 오랜 동안 공부하고 해방 후 귀국하여 지방에서 활동하면서 일본풍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평가 받다가 70세가 넘어서 과감하게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지극히 한국적인 주제를 수묵화에 강렬한 오방색의 채색을 혼합하는 독창적인 기법으로 표현한 작품을 선보인 것이다. 강렬한 색채와 자유로운 화면 구성을 통해 한국의 토속적인 정서와 민족성이 생명력으로 들끓어 오르는 그의 작품은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역사를 떠난 민족은 없다. 전통을 떠난 민족은 없다. 모든 민족예술에는 그 민족 고유의 전통이 있다.” 박생광 화백의 말이다.   한국적인 주제를 다루기 시작하면서 호를 ‘그대로’로 바꿨고, 작품에 적는 제작연도도  서기가 아닌 단기로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새로운 작품세계를 연지 얼마 안된 1985년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붓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장소현 / 미술평론가·시인문화 산책 나이 열정 박생광 화백 미주한인 예술계 장정자 화백

2022-06-08

[문화 산책] 국악은 우리 시대의 문화자산

국악 지휘자, 작곡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한창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내 친구 김용만이 생전에 펴낸 책의 제목이 ‘이제 국악은 없다’이다. 국립, 시립, 도립 국악관현악단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느낀 생각과 안타까움을 기록한 책이다.   “국악은 없다”는 파격적인 표현은 한국 문화예술의 한 단면을 아프게 말해준다. 서양에서 들어온 음악에 밀려 골방에 처박힌 우리 전통음악의 현실에 대한 비판이요, 국악과 양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호소이기도 하다.   “우리의 국악은 양악의 위세에 눌려 숨 한번 크게 쉬지 못하고 겨우 명맥만 유지해온 게 사실입니다… 우리는 양악에 대해서 늘 피해의식에 젖어왔습니다. 학교의 음악실에서, 또는 방송매체의 음악 프로그램에서 양악의 비중이 커질수록 국악은 그 설 자리를 점차 잃어왔기 때문입니다.”   김용만을 비롯한 젊은 국악인들의 주장은 ‘국악’이니 ‘우리 음악’이니 하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서 특별 대우하는 척하면서 구석방에 처박지 말고, 그냥 서양음악과 똑같이 ‘음악’으로 대해 달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껄끄러움이 음악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근원이 다른 두 종류의 문화가 서로 화합하지 않고 공존하고 있는 현상은 문화, 예술, 사상 모든 분야에 존재한다.     예를 들어, 서양화와 동양화 또는 한국화, 전통춤과 발레 또는 현대무용, 탈춤이나 마당극 같은 전통극과 서양 연극의 불편한 공존이다.     우리나라의 현대화 과정에서 ‘현대화는 곧 서구화’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생긴 문제들이다. 사상이나 철학에서도 서양 우러르며 따라하기 같은 일이 되풀이됐으니 여간 큰 문제가 아니다.   김용만이 책에서 다룬 내용은 70~80년대의 현실이니, 한참 전의 일이다. 그런데, 그때보다도 더욱 한심한 일이 바로 얼마 전에 그것도 정부 차원에서 벌어졌다.     논란의 핵심은 교육부의 2022 개정 교육 과정에서 국악이 전면 배제됐다는 것이다. 전국국악교육자협의회에 따르면 교육부가 공개한 ‘2022 개정 음악과 교육과정 시안’의 ‘성취 기준’ 항목에 국악 관련 내용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국악계가 이런 국악 홀대 논란에 반발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전국국악교육자협의회는 “졸속 개정 작업을 즉각 중단하라”며 규탄 성명을 발표했고, 국악인들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반발했다. ‘국악교육의 미래를 위한 전 국악인 문화제’를 청계광장에서 열고, 국악 교육 축소 정책 재검토를 촉구하기도 했다.     판소리를 전공한 가수 송가인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한 발언이 관심을 모았다.   “눈물이 날 것 같다.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다는 자체가 이해도 되지 않고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조상님들이 들으면 정말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실 것 같다. 우리 학생들이 보고 자라야 하는 것이 우리 문화이고, 우리 전통인데 (학교에서) 우리 전통을 배우지 않으면 어디서 배우겠나.”   이런 반발에 놀란 교육부는 우물쭈물 한 발 물러서는 모양새로 변명을 한다. “국악이라는 용어를 드러내지 않고 좀 더 포괄성을 높여 일반적인 용어로 표기했을 뿐 여전히 국악은 살아있다. 앞으로 학계 및 현장 교원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겠다.”   국악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우리 전통음악이 그만큼 뛰어나고, 세계화의 지름길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최근 세계 음악시장에서 부상하고 있는 K팝에서도 국악을 접목한 ‘크로스오버 국악’이 주목을 받는 것은 국악이 단순한 옛 전통이 아닌 동시대적 가치가 큰 문화자산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 산책 문화자산 국악 국악인 문화제 국악관현악단 지휘자 국악 지휘자

2022-06-08

[문화 산책] 나이를 이겨낸 열정

원로화가 장정자 화백의 개인전이 잔잔한 화제가 되었다. 평생 그림을 그렸는데 80대 중반의 나이에 이르러 비로소 첫 개인전을 열었다는 점에서도 관심을 모았고, 전시장을 가득 채운 검은색 위주의 그림들이 내뿜는 곰삭은 연륜의 향기와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도 높이 평가할 만했다.   이번 장정자 개인전은 나이 탓하며 의욕을 잃어버린 노년층에 용기를 주었고, 타성에 젖어 게을러진 후배 작가들에게는 따끔한 자극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우리 미주한인 예술계의 고질적 문제인 고령화에도 작은 희망이 되었을 것으로 믿는다.   날이 갈수록 노령화되어가는 미주한인 예술계의 현실에서 90대의 고령에도 나이의 한계를 극복하고 부지런히 시를 써서 발표하는 박복수 시인이나 80대 중반의 나이에 미주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하고 첫 소설집을 펴낸 민원식 작가 같은 분들은 큰 힘이 된다. 그밖에도 나이를 잊고 열심히 활동하는 많은 노익장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물론 이 같은 원숙하게 농익은 열정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몸과 마음과 정신이 모두 건강해야 비로소 가능하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해보지도 않고 “이 나이에 뭘 하랴?”고 퍼질러 앉아버리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나이 먹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반드시 있는 법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과감한 변신이 어려워진다. 나이를 먹을수록 겁이 많아지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관성(慣性)이 강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습관으로 작품을 하는 ‘언어 기능공’이나 ‘조형 기능공’으로 전락하기 쉽다.   어느 분야나 비슷한데 일단 자기 작품 세계를 인정받고, 어느 정도 명성이 생기면 그에 알맞은 성공이 보장되고, “아무개 작가는 어떠어떠한 작품을 한다”라는 식의 틀이 만들어진다. 그걸 ‘개성’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고 거기에 안주하게 된다. 그리고 매너리즘이라는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된다.   물론 예외도 있다. 말년에 과감하게 변신하여 멋지게 성공한 작가들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김환기 화백의 대표작인 전면 점화(點畵)는 생애 마지막 몇 년 뉴욕에서 활동할 때 피어났다.   박생광(1904~1985년) 화백 같은 작가도 좋은 예다. 내고(乃古) 박생광 화백은 한국현대미술사의 새롭고도 독창적인 장르를 구축해낸, 수묵채색화의 거장으로 평가 받고 있고,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작가다.   그런데 이런 성취가 생애 마지막 8년 동안의 놀랍고도 대담한 예술적 변신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일본에서 오랜 동안 공부하고 해방 후 귀국하여 지방에서 활동하면서 일본풍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평가 받다가 70세가 넘어서 과감하게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지극히 한국적인 주제를 수묵화에 강렬한 오방색의 채색을 혼합하는 독창적인 기법으로 표현한 작품을 선보인 것이다. 강렬한 색채와 자유로운 화면 구성을 통해 한국의 토속적인 정서와 민족성이 생명력으로 들끓어 오르는 그의 작품은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역사를 떠난 민족은 없다. 전통을 떠난 민족은 없다. 모든 민족예술에는 그 민족 고유의 전통이 있다.” 박생광 화백의 말이다.   한국적인 주제를 다루기 시작하면서 호를 ‘그대로’로 바꿨고, 작품에 적는 제작연도도  서기가 아닌 단기로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새로운 작품세계를 연 지 얼마 안 된 1985년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붓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박생광 화백의 예는 고령화로 날이 갈수록 활기를 잃어가는 우리 미주 한인문화계에 좋은 자극이 될 것이다. 장소현 / 미술평론가·시인문화 산책 나이 열정 박생광 화백 미주한인 예술계 장정자 화백

2022-06-02

[문화 산책] 김지하 시인이 남긴 숙제들

김지하 시인이 세상 떠났다는 기사를 읽고, 명복을 빌며, 그가 세상에 남기고 간 책들을 찾아서 다시 읽었다.   ‘타는 목마름으로’ ‘황토’ ‘오적’ ‘애린’ 등의 시집은 물론이고, 김지하의 사상이 담긴 ‘남녘땅 뱃노래’ ‘밥’ ‘살림’ 같은 산문집을 주로 챙겨 읽었다.   김지하는 민족정신의 큰 예술가이자 사상가다. 우리 문화 예술에 미친 영향력도 매우 크다. 하지만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말년의 행적으로 인해서 ‘변절자’라는 오명을 벗지 못했고, 예술가로도 바른 평가를 받지 못했다. 참 안타깝다. 소설가 이문열의 표현을 빌리자면 김지하는 “한때 헹가래 받았다가 떨어져 냉담한 대접받는 사람”이 되었다.   널리 알려진 대로 고인은 여러 차례 투옥되며 고초를 겪고 평생 후유증을 앓았으며 최근 수년간 지병으로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온갖 박해와 고통을 이겨내며 자신의 예술과 사상세계를 세워간 시인은 참 대단한 사람이다.     그런 김지하의 예술과 사상을 정치적 이해관계나 운동권의 진영논리로 재단하고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 사회에는 그런 일이 너무도 많았고, 그 바람에 많은 정신적 자산을 잃었다. 큰 손실이다.   한국사회의 현대화, 민주화 과정에서 투사도 물론 필요했지만 더 소중한 것은 정신을 바로 세워줄 사상가였다.   그의 사상은 이제부터라도 새롭게 평가되고, 구체적으로 계승 발전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특히 한국의 문화예술이 세계로 힘차게 뻗어나가는 지금이야말로 김지하의 사상과 철학을 든든한 도약대로 삼아야야 할 때다.   김지하의 사상 공부는 생명사상, 화엄사상, 율려(律呂), 후천개벽, 풍류, 신바람, 흰 그늘과 시김새의 미학 등 우리 겨레의 마음바탕을 읽어내고, 그것을 오늘의 삶에 구체적으로 접목시키려는 것이었다. 그 정신적 뿌리는 불교, 동학, 천주교를 비롯한 종교와 우리의 예술, 특히 민중들의 삶에서 우러난 전통이었다.   김지하는 여느 사상가들처럼 이론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사상을 시나 연극, 판소리 사설 등의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켜 표현하고, 짙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행동가였다. 또한, 원주의 지학순 주교나 장일순 선생과 함께 생명사상을 실천하는 일에도 힘썼다.   60~70년대 서울대를 중심으로 한 젊은 문화패들 사이에서 김지하의 영향력은 실로 막강했다. 문학, 연극, 탈춤이나 판소리 등의 전통예술, 미술 등 넓은 범위에서, 특히 민족민중 예술에서 ‘지하 형’으로 불리는 김지하의 생각과 주장은 강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에 문화 운동을 심은 민족예술 1세대의 대부였다.     이른바 ‘김지하 사단’으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그림의 오윤, 노래의 김민기, 춤 이애주, 창작 판소리 임진택, 탈춤 채희완, 연극의 김석만을 비롯한 ‘연우무대’ 단원들, 국악하는 김영동까지 민족민중 예술 1세대가 김지하의 영향을 받으며 각자 자기 분야에서 80년대 미학과 예술론의 성과를 이루었다.   미술 쪽에서도 80년대 초부터 활발하게 전개된 민중미술의 정신적 주춧돌을 놓은 것이 김지하 시인이었다. 1969년에 쓴 ‘현실동인 선언문’이 그것이다.   이렇게 활기차게 전개되었던 김지하의 사상과 예술의 정신을 오늘날에 되살리는 일이 바로 우리들에게 주어진 숙제다.   끝으로 김지하를 이야기하면서 그 뒤에서 헌신한 부인 김영주와 장모 박경리 선생의 존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여성의 존재는 늘 숨은 영웅이다. 역사의 굽이마다 그랬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 산책 김지하 시인 김지하 시인 김지하 사단 예술과 사상세계

2022-05-26

[문화 산책] 예술로 승화된 아픈 기억들

내가 영화 ‘사코와 반제티’를 처음 감상한 것은 50년 가까이 전인 일본 유학시절이었다. 오랜 옛날 일인데도, 영화의 장면들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당시 새내기 극작가였던 내게 매우 강렬한 인상을 준 모양이다.   ‘사코와 반제티’는 100여년 전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가난한 이민자를 희생양으로 삼은 ‘마녀재판’이며 ‘사법살인’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 엄청난 국제적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었다. 특히 이민자들에게는 이야기하는 바가 큰 영화다. 사건을 간추리면 이렇다.   1920년 4월 매사추세츠 보스턴 근교의 한 구두 공장에서 경리담당 직원과 경비원이 총에 맞아 죽고, 현금 1만6000달러가 털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얼마 뒤 이탈리아 이민자인 니콜라 사코와 바르톨로메오 반제티가 용의자로 체포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사코는 구두수선공이었고, 반제티는 생선장수로 힘겹게 생계를 꾸려가는 가난한 이민자였다.   경찰은 확실한 물적 증거가 없음에도 두 사람을 범인으로 몰고 갔다. 이를 위해 두 사람이 이탈리아에서 온 이민자이고 1차 세계대전 참전을 거부한 무정부주의자라는 사실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당시 미국 사회는 제1차 대전이 끝난 후 심각한 물가상승과 빈부격차, 과격해진 노사분규, 스페인 독감의 유행으로 민심이 극도로 흉흉해진 상태였다. 이런 와중에 무정부주의자들의 폭탄테러가 일어나자 정부로서는 희생양을 필요로 했고 여기에 무고한 사코와 반제티가 걸려든 것이었다. 따라서 이 재판은 ‘사상재판’의 성격을 띠며 국제적 관심을 모았다. 두 사람은 재판 내내 결백을 주장했고 증인도 있었고 제3자가 범행을 자백하기도 했으나 이들에게 공정한 재판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1921년 7월14일 두 사람에게 사형 판결이 내려졌다. 그러자 미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편견과 적개심에 근거한 불공정한 재판에 분노하는 항의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파리에서는 미국 대사의 집이 파괴되고 구명운동을 벌이던 시위대에 폭탄이 터져 20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을 정도였다.   버트런드 러셀, 아인슈타인, 시인 아나톨 프랑스, 마리 퀴리, 이사도라 덩컨 등 세계 지성인들도 ‘최악의 사법살인’이라고 항의하며 구명운동에 나섰다.   그러자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사형 집행을 연기하고 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하지만 위원회가 내린 결론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1927년 8월23일 두 사람은 전기의자에 앉아 죽음을 맞았다. 두 사람은 처형 직전 마지막으로 제공된 스프와 고기, 토스트, 차 등으로 최후의 만찬을 즐기고 당당하게 죽었다. 처형 당시 사코는 33세, 반제티는 36세였다. 사형집행으로 엄청난 항의가 뒤따라 파리, 런던 등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두 사람이 사형 당한 지  30여년이나 지난 1959년 진짜 범인이 나타나자 그제야 진실이 밝혀지고 이들에게 사면이 제안됐다. 그리고 반세기가 지난 뒤인 1977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사코와 반제티의 무죄를 확인하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억울한 누명을 벗고 명예를 회복하는데 50년이나 걸린 것이다.   4·29 30주년을 맞으며 미술, 문학 등의 문화행사를 기획하고, 이민자와 디아스포라에 대해 공부하면서 이 사건과 영화 장면들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편견과 의혹이 가져온 폭력이 얼마나 가혹한 것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치유의 지혜를 공유하기 위해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사코와 반제티 두 사람은 그림과 노래로도 명예가 회복됐다. 미국화가 벤 샨이 그린 ‘사코와 반제티의 수난’ 시리즈 23점 등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우리가 겪은 4·29 아픔도 예술작품으로 승화되어 오래도록 남을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 산책 예술 승화 매사추세츠 주지사 세계대전 참전 매사추세츠 보스턴

2022-05-19

[문화 산책] 미술계 ‘여풍’과 어머니 마음

‘베네치아 여인천하.’ 올해 베네치아비엔날레 소식을 알리는 한 신문 기사의 제목이다. 세계 최대 미술축제 중의 하나인 베네치아비엔날레 127년 역사상 가장 거센 여풍(女風)이 불어닥쳤다는 소식이다. 1895년 비엔날레 창설 이래 가장 극적인 성비(性比) 역전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결코 호들갑이 아니다. 지난달 23일 공식 개막한 본 전시 초청 참여 작가 213명 중 188명이 여성으로 약 90%를 차지했다. 최고상 역시 모두 여성 작가에게 돌아갔다. 본 전시 황금사자상 수상자는 미국 조각가 시몬 레이(55)였고, 국가대표 대항전 성격의 황금사자상은 영국관의 작가 소냐 보이스(60)가 차지했다. 역대 영국관 첫 흑인 여성 작가다.   지난해 가을 ‘루브르박물관 228년 역사상 첫 여성 관장 탄생’이란 기사를 읽는 순간, 드디어 여성들이 미술계의 정점을 찍기 시작했구나라는 실감이 들었는데, 이번 베네치아의 소식은 미술계에서 ‘여성’이라는 키워드가 명실상부 주류로 떠올랐음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기나긴 세월 완고하게 버티고 있던 남성 중심 가부장제의 벽을 통쾌하게 깨부순 것이다. 일그러진 사회제도 때문에 그동안 억눌려 있던 여성들의 재능이 화산 폭발하듯 터져 나온 것이다.   바야흐로,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들의 활약이 대세다. 특히 문화, 예술 쪽에서 그렇다. 이미 그렇게 되고 있고, 앞으로는 더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으로도 그렇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세계 미술계의 중심 화두는 여성미술이었다. 세계 여러 곳의 주요 미술관에서 대규모의 여성미술 전시회가 열릴 예정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제대로 열리지 못한 것이 큰 유감이다.   한국의 미술계에서도 젊은 여성작가들이 도약하여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2019년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보 4명 모두가 여성작가였고, 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공식 참여한 한국 작가들도 전원 여성이었다. 서울, 부산, 대구 시립미술관을 이끄는 수장도 모두 여성이 임명돼 눈길을 끌었다. ‘미술계 우먼파워가 경매, 화랑, 화단을 장악했다’는 평가는 전혀 낯설지 않다.   우리 미주 한인 문화예술계에서도 여성들의 활동이 압도적이다. 작품의 질에 대해서는 함부로 평가할 수 없는 일이지만, 숫자적으로는 문학, 미술, 음악 등 모든 분야에서 여성작가가 월등하게 많다.   “여성이 완벽한 존재는 아니지만 남성에 비해서는 ‘반박할 여지없이’ 우수한 존재다. 현대사회의 거의 모든 문제는 권좌를 지키는 데 몰두해 온 노쇠한 남성 정치가들이 불러일으킨 것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싱가포르에서 열린 리더십 관련 강연에서 주장한 말씀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말에 동의한다.   내가 여성미술가들을 믿고 희망을 거는 까닭은, 어머니의 마음이 예술의 근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케테 콜비츠의 작품에 담겨 있는 어머니의 사랑이 주는 짙은 감동은 여성이 아니면 도달할 수 없는 세계다. 콜비츠는 아들과 손자를 전장에서 잃었다. 그러므로 그이의 전쟁 반대는 그저 관념적인 구호가 아닌 것이다.   여성 미술의 도약을 주목하는 것도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모든 예술 뒤에 있는 어머니의 그림자를 읽고, 냄새를 맡는 일도 소중할 것이다. 장소현 / 미술평론가·시인문화 산책 미술계 어머니 여성미술 전시회 올해 베네치아비엔날레 여성 관장

2022-05-12

[문화 산책] 화폐에 나오는 예술가들

화가 윌리엄 터너, 세잔, 뭉크, 자코메티,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 모차르트, 생텍쥐페리, 신사임당….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통용되는 화폐의 모델로 등장한 예술가들이다.   미국의 시인이자 배우, 인권운동가이며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 여성’ 중 한 사람인 마야 안젤루(1928~2014)가 25센트 주화(동전)에 새겨졌는데 흑인 여성으로는 처음이라고 한다. 미국 사회 각 분야에서 업적을 남긴 여성들을 기리는 ‘미국 여성 쿼터 프로그램’의 하나라고 한다.   동전에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좌우로 두 팔을 뻗은 안젤루 시인의 모습을 담았는데 연방 재무부는 “안젤루의 시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그녀가 살았던 방식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화폐를 새로 디자인할 때마다 우리는 미국이 중시하는 가치, 미국 사회가 어떻게 진보했는지에 대해 말할 기회를 얻는다”라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이 기사를 읽고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보니, 세계적으로 화폐의 모델이 된 예술가가 제법 많다.   통용되는 화폐는 시대의 얼굴이다. 돈을 보면 그 시대, 그 나라의 사회, 문화, 경제상을 엿볼 수 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화폐는 한정된 작은 공간에 발행 국가의 역사, 문학, 음악, 미술, 과학, 정치 등을 독창적인 예술성과 조형미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화폐의 디자인은 그 나라 국민들의 보편적인 정서 가치를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한 국가 예술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세계 46개국 은행권 앞면의 디자인을 분석한 결과 인물초상이 83.2로 압도적이었고, 대체로 국민적 존경을 받는 역사적 인물이나 정치 지도자가 단골 모델로 등장한다. 대한민국으로 치면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 등이다. 참고로, 한국에서 가장 오랜 기간 모델로 등장한 단골은 단연 세종대왕이다.   인물 초상의 경우 대체적으로 후진국으로 갈수록 정치인, 특히 국가원수가 많이 등장한다. 반면 선진국으로 갈수록 비정치인 특히 문화예술인이 등장하는 빈도가 높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예를 들어, 유로화 통일 이전에 통용되었던 프랑스의 프랑화는 종류별로 모으면 문화예술 사전이 될 정도라고 한다. 예술가가 화폐의 모델로 등장한 대표적 예를 몇 가지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작곡가 베를리오즈, 화가 폴 세잔, 인상파 음악의 시조 드뷔시, 건축가 에펠, 철학자 파스칼, 생텍쥐페리 등이 모델로 등장한다. 그밖에 소설가 찰스 디킨스, 화가 윌리엄 터너(영국), 작곡가 모차르트, 심리학자 프로이트(오스트리아), 화가 라파엘로, 작곡가 벨리니, 무선전신 발명가 마르코니(이탈리아),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일본) 등도 화폐의 등장인물이었다.   여성으로는 과학자 퀴리부인(프랑스), 교육자 몬테소리(이탈리아), 과학자이자 화가인 메리안(독일), 여권운동가 로자 메이레더(오스트리아), 소프라노 가수 넬리 멜바(호주) 등이 화폐의 모델이다.   한국의 예술가 중에서 돈의 모델을 선발한다면 누가 꼽힐까? 신사임당이 여성 대표 겸 화가로 선발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문화 산책 예술가 화폐 단골 모델 모차르트 생텍쥐페리 기간 모델

2022-05-02

[문화 산책] 화폐에 나오는 예술가들

화가 윌리엄 터너, 세잔, 뭉크, 자코메티,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 모차르트, 생텍쥐페리, 신사임당….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통용되는 화폐의 모델로 등장한 예술가들이다.   미국의 시인이자 배우, 인권운동가이며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 여성’ 중 한 사람인 마야 안젤루(1928~2014)가 25센트 주화(동전)에 새겨졌는데 흑인 여성으로는 처음이라고 한다. 미국 사회 각 분야에서 업적을 남긴 여성들을 기리는 ‘미국 여성 쿼터 프로그램’의 하나라고 한다.   동전에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좌우로 두 팔을 뻗은 안젤루 시인의 모습을 담았는데 연방 재무부는 “안젤루의 시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그녀가 살았던 방식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화폐를 새로 디자인할 때마다 우리는 미국이 중시하는 가치, 미국 사회가 어떻게 진보했는지에 대해 말할 기회를 얻는다”라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이 기사를 읽고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보니, 세계적으로 화폐의 모델이 된 예술가가 제법 많다. 화가, 문인, 작곡가, 가수 등 분야도 다양하다. 예술가들이 그만큼 국민들과 친숙하고, 높은 대접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참 부럽다.   통용되는 화폐는 시대의 얼굴이다. 돈을 보면 그 시대, 그 나라의 사회, 문화, 경제상을 엿볼 수 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화폐는 한정된 작은 공간에 발행 국가의 역사, 문학, 음악, 미술, 과학, 정치 등을 독창적인 예술성과 조형미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화폐의 디자인은 그 나라 국민들의 보편적인 정서 가치를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한 국가 예술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세계 46개국 은행권 앞면의 디자인을 분석한 결과 인물초상이 83.2로 압도적이었고, 대체로 국민적 존경을 받는 역사적 인물이나 정치 지도자가 단골 모델로 등장한다. 대한민국으로 치면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 등이다. 참고로, 한국에서 가장 오랜 기간 모델로 등장한 단골은 단연 세종대왕이다. 50년 가까운 세월에 걸쳐 여러 액면가의 돈에 두루 사용된 수퍼모델인 셈이다.   인물 초상의 경우 대체적으로 후진국으로 갈수록 정치인, 특히 국가원수가 많이 등장한다. 반면 선진국으로 갈수록 비정치인 특히 문화예술인이 등장하는 빈도가 높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예를 들어, 유로화 통일 이전에 통용되었던 프랑스의 프랑화는 종류별로 모으면 문화예술 사전이 될 정도라고 한다. 스위스 은행권에도 건축가, 작가, 음악가 등 예술가가 자주 등장한다. 예술가가 화폐의 모델로 등장한 대표적 예를 몇 가지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작곡가 베를리오즈, 화가 폴 세잔, 인상파 음악의 시조 드뷔시, 건축가 에펠, 철학자 파스칼, 생텍쥐페리 등이 모델로 등장한다. 그밖에 소설가 찰스 디킨스, 화가 윌리엄 터너(영국), 작곡가 모차르트, 심리학자 프로이트(오스트리아), 화가 라파엘로, 작곡가 벨리니, 무선전신 발명가 마르코니(이탈리아),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일본) 등도 화폐의 등장인물이었다.   여성으로는 과학자 퀴리부인(프랑스), 교육자 몬테소리(이탈리아), 과학자이자 화가인 메리안(독일), 여권운동가 로자 메이레더(오스트리아), 소프라노 가수 넬리 멜바(호주) 등이 화폐의 모델이다.   한국의 예술가 중에서 돈의 모델을 선발한다면 누가 꼽힐까? 신사임당이 여성 대표 겸 화가로 선발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 산책 예술가 화폐 단골 모델 모차르트 생텍쥐페리 기간 모델

2022-04-21

[문화 산책] 사람 귀하게 여기는 사회

신문이나 잡지에서 내가 가장 반갑고 관심 있게 읽는 것은 인터뷰 기사다. 사람 이야기인 인터뷰 기사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사람 공부를 널리 펼치는 흥겨운 마당이다. 뭔가 배울 점이 있는 사람들의 속 깊은 이야기에서 감동을 받고, 나를 되돌아보는 귀한 배움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동네 신문에서는 인터뷰 기사가 거의 없어서 섭섭하다. 아마도 인력은 부족한데 품이 많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해봐서 조금은 아는데 대상 인물을 선정하고, 정보를 정리해서 질문 자료를 만들고,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기사로 정리하고…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한국이 선진국에 당당하게 진입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그런데 언론을 통해서 보고 읽는 한국의 사람 대접은 전혀 선진국이 아닌 것 같다. 특히나 선거철의 정치판 돌아가는 꼴을 보면 선진국은커녕 맹수들이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동물의 왕국으로 보인다. 서로 헐뜯고 깎아내리기에 정신없이 바쁘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 같은 것은 전혀 느낄 수 없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물론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장점과 단점을 함께 가지고 있고,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고 실수를 할 수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평가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사람의 단점을 따스하게 감싸주고, 좋은 점을 찾아 북돋아주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작은 모임이나 나라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명언도 있는 것 아닐까.   사람의 좋은 능력을 북돋아주는 노력 없이, 흠집을 찾아내서 끌어내리다 보면 사회적으로나 역사적으로 큰 손실이 생길 수 있다. 친일파 논쟁 같은 것이 좋은 예다.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서 함부로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다각도로 다시 생각해봐야 할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다른 분야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공부하는 미술 분야만 보아도 친일파 시비로 인한 손실이 매우 큰 것으로 여겨진다.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고, 좋은 작품도 많이 남긴 큰 작가 중에 친일파로 몰려 매장된 이가 적지 않다.   일단 친일파로 찍히면 가차없이 역사의 그늘로 사라지고 만다. 그런데, 친일파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기준은 참 애매한 경우가 많다. 더구나, 그런 판단이 정치적 이념이나 진영논리에 좌우되면 매우 위험해진다.   안타깝기는 미투 운동도 마찬가지다. 플라시도 도밍고 같은 국제적 거물도 간단하게 날려버리는 걸 보면 미투의 위력이 참 대단하다. 그런 운동이 왜 필요한지는 잘 알겠고, 철저하게 파헤쳐 도려내는 엄격함도 이해는 되지만 마음은 편치 않다. 손실도 너무 크다.   다른 분야는 잘 모르겠고, 내가 한때 몸담았던 한국의 연극 동네는 중요한 핵심 부분이 뭉텅 잘려버리는 바람에, 몰골이 영 말씀이 아니게 되었다. 미투로 밀려난 이들이 다시 활동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물론 그 덕에 다음 세대들의 마당이 열린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지만 역사의 큰 물줄기가 막혀버린 것은 못내 아쉽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친일파 쳐내고, 왼쪽 날개(좌익) 잘라내고, 미투 도려내고 나면 과연 무엇이 남을까? 그런 의문이 들 만큼 쳐내고, 잘라내고 도려낸 부분이 너무 크다는 것은 문제다.   이처럼 사회적 문제가 된 일들은 그나마 다시 논의할 여지라도 있지만,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그늘에서 벌어지고 있는 ‘터무니 없는 깎아내리기’ 때문에 생긴 손실이 얼마나 클까? 그런 생각을 하면 서글퍼진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 산책 사회 사회적 문제 우리 사회 인터뷰 기사

2022-04-14

[문화 산책] 고전의 위대한 힘

아주 낯익은 사람과 오랜만에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는데, 아뿔싸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무척 멋쩍고 미안하다.   클래식 음악을 듣다가도 그런 경우가 있다. 매우 귀에 익은 음악인데 곡명이 가물가물, 작곡가가 누구인지도 아물아물하다. 작곡가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그런 나에게 전문가의 조언은 큰 위로가 된다.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감상하면 됩니다. 음악은 지식으로 감상하는 것이 아닙니다”라는 말, 정말 반가운 말씀이다.   음악에는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이라는 구분이 있다. 물론 문학에도 순수문학과 대중문학 또는 상업문학에 대한 논쟁이 있었고, 미술에서도 순수미술과 생활미술 또는 실용미술은 여러 모로 다르다. 무용도 발레나 현대무용처럼 감상을 위한 것도 있고, 사교춤처럼 직접 즐기며 추는 춤이 있다.   이런 구분은 예술의 사회적 위치나 기능, 작가의 마음가짐 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술 작품의 쓰임새나 모양에 관한 것이다. 이런 구분을 고급 문화, 저급 문화의 구별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저, 존재 이유나 소비 방식이 다를 뿐이다.   하지만, 고전(古典)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다각적으로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클래식을 우리말로는 고전이라고 한다.   지금은 고전의 시대가 아니다. 석학 이어령 선생의 진단이 맞다. 쓸쓸하다. “책이 페이스북을 못 이기고, 철학이 블로그를 못 이기고, 클래식 음악이 트로트를 못 이기는 시대잖아!”   하지만 세상이 이렇게 가벼워져 갈수록 고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고전의 위대한 힘을 믿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그 위대함이 없어진 것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고전에 대한 사전의 설명을 빌리면 이렇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 작품"이다. 고전은 절대로 ‘낡은 것'이 아니라 ‘옛것이되 오늘의 것'으로서, 더 나아가 미래에도 충분히 기능할 수 있는 것의 총칭이다.   고전은 시냇물이 아니라 바다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을 찾을 수 있고, 모든 것을 잃어도 그것을 토대로 재건할 수 있는 정신적, 문화적 보고(寶庫)라고 말하기도 한다.   모든 예술 분야에 고전이 있다. 고전문학, 고전음악, 고전연극, 고전영화, 고전 오페라 등등 오늘날에도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명작들이 참 많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사라져가고 있다. 긴 시간 투자해 두꺼운 책을 읽고, 교향곡 전곡을 지그시 감상하고, 옛날 그림을 보겠다고 멀리 미술관을 찾는 인간은 ‘희귀동물'이 되었다.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도서관을 뒤지는 노력 필요 없이, 컴퓨터나 손전화기 누르면 온갖 정보가 좌르르 쏟아지는 세상이다. 사람들은 아예 책을 읽지 않고, 긴 글은 읽지 않기 때문에 짤막한 토막글만 남은 세상이다. 검색은 잘 하는데 사색은 하지 않고, 의미는 외면하고 재미만 찾는다.   그런 세상을 탓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지금 우리가 만들고 누리고 있는 문화 예술 작품이 얼마나 미래의 고전으로 남을까를 조금은 고민하자는 말이다. 문화 예술을 쓰고 버리는 소비재가 아니다.   긴 시간이 지나도 그 가치를 인정받을 정신적 문화적 소산, 즉 고전이 자라날 토양을 마련하는 것이 후대를 위한 우리의 의무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 산책 고전 고전문학 고전음악 고전영화 고전 문화 예술

2022-04-07

[문화 산책] 동물화가 ‘피그카소’의 그림

세상에는 사람보다 훨씬 유명한 짐승이 많다. ‘피그카소’도 그런 유명 동물 중의 한 분이시다. 피그카소(Pigcasso)라는 이름에서 금방 알아챘겠지만 그림 그리는 돼지, 즉 ‘돼지 화가’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사는 6살 암컷 돼지다.   이 피그카소가 그린 작품 ‘야생과 자유(Wild and Free)’가 지난해 12월에 2만 파운드(약 3174만원)에 팔려서 화제가 된 일이 있다. 동물 화가가 그린 작품 중 가장 비싼 값이었다. 그 이전의 최고가 기록은 침팬지 화가 ‘콩고’의 1만4000파운드였다니, 돼지가 원숭이를 가볍게 눌러버린 셈이다.   참고로 작품 ‘야생과 자유’에는 “피그카소가 남아공 웨스턴케이프의 바다를 보고 영감을 얻어 그린 작품으로, 파란색, 녹색, 흰색 등의 줄무늬가 특징이다. 피그카소는 입에 붓을 물고 아크릴 물감으로 대형 캔버스에 이를 그렸다”는 친절한 설명이 붙어있다고 한다.   '빈센트 햄고흐'라는 멋진 별명도 가지고 있는 피그카소는 지금까지 400점이 넘는 작품들을 그렸고, 2019년에는 전시회도 가졌다. 작품들은 대부분 판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완성한 작품에는 코로 찍은 ‘낙관’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피그카소는 2016년 태어나 생후 한 달쯤 동물단체의 조앤 레프슨이라는 사람에게 구조됐다고 한다. 우연히 헛간에 있던 붓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그 아기 돼지가 그림에 관심이 있다는 걸 알아봤다고 한다. 그림 덕에 도살장으로 끌려가 돼지고기가 될 운명에서 구원을 받았다는 감동적(?) 이야기다. 미술은 구원인가?   피그카소 작품의 판매수익은 동물 보호를 위해 사용된다고 한다. 구원에 대한 보답인가?   피그카소의 사연은 단순히 신기한 화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이어진다. 나처럼 그림에 대해서 글을 쓰는 인간을 난처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예술이란 인간 정신의 표현이다”라는 주장이 무색해지기 때문이다.   피그카소의 보호자이자 예술가인 레프슨은 이렇게 말한다. “이 작품은 단순히 시각적으로 인상적이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동물들에게 큰 의미가 있다. 이 그림을 보면 동물들의 지능과 창의성에 큰 가치를 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동물들의 지능과 창의성에 큰 가치를 둔다고? 정말 그런가?   한 발 더 나가서 이 문제는 조수를 시켜서 그리는 그림, 인공지능이나 로봇 같은 기계가 그린 작품(?)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라는 고약한 질문이 되기도 한다.   동물이 그린 그림은 많다. 원숭이, 코끼리, 돼지 등이 화가로 활약하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들은 이른바 ‘추상화’라는 그림이다. 무엇을 그린 것인지 말로 간단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그림들이다.   결과물인 작품만 보고는 인간이 그린 것인지, 동물의 작품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실제 실험을 통해서 밝혀진 사실이다. 이름 높은 화가의 작품과 어린아이의 그림, 동물의 그림을 섞어 놓으면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   추상화를 말로 설명하는 것은 언제나 진땀나는 일이다. 어떤 이는 “추상화는 무엇을 그렸는가가 아니고, 왜 어떻게 그렸는지를 고민하면서 감상하세요”라고 설명한다.   글쎄, 그렇게 간단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으로 사람이 그린 그림과 동물의 작품 사이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림에 담긴 인간의 사상이나 철학, 정신세계란 무엇인가? 사람을 감동시키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알고 싶다. 장소현 / 미술평론가·시인문화 산책 피그카소 동물화 피그카소 작품 동물 화가 작품 사이

2022-03-31

[문화 산책] 예술계의 부끄러운 여성 차별

모르고 그냥 지나쳤는데 지난 8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고 한다. 좀 우습다. ‘여성의 날’이 왜 따로 필요한가? ‘아버지날’처럼 어색하기 짝이 없다. 이거야 말로, 아직도 여성차별이 심각한 문제라는 증거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한국미술과 여성에 대해서 좀 살펴보자.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도 이제는 상당 부분 정리가 된 것으로 보인다. 많은 학자들의 연구 덕이다. 큰 줄기는 그런대로 정리가 되었고, 이제부터는 균형 잡힌 각론 연구가 구체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단계로 보인다. 특히 아직 연구가 덜 된 부분에 대한 관심과 공부가 필요하겠다.   예를 들어, 리얼리즘 연구나 여성미술가에 대한 자료 발굴과 연구 등이다. 그중에서도 여성미술가에 대한 부분 집중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차별대우에 대한 반성이요, 부끄러운 역사 공부다.   여성예술가에 대한 차별대우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완고하게 존재해왔다. 생각해보면 참 잔인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인류의 절반이 여자인데 그 절반을 근거도 없이 홀대하다니! 야만이 따로 없다. 한국에서는 유교적 가치관 때문에 한층 심했지만 걸핏하면 ‘레이디 퍼스트’를 내세우는 서양 사회에서도 형편이 그다지 좋은 건 결코 아니었다.   문화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여성에 대한 대우가 말이 아니었다. 믿기 어려울 지경이다. 가령, 미국에서 여성의 투표권이 법으로 보장된 것은 1920년 8월26일 수정헌법 제19조가 통과되고부터란다. 100년 남짓밖에 안 됐다.   형편이 이러하니 예술계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미술, 음악 등 각 분야에서 노골적으로 여성을 차별했다. 그런 악조건에서도 뛰어난 여성예술가들이 많이 나온 것은 참으로 고맙고 눈물겨운 일이다.   미술사의 관점에서 여성미술가들을 본격적으로 재조명하고 새롭게 평가하는 기폭제가 된 것은 린다 노클린의 ‘왜 위대한 여성미술가는 없는가?’라는 논문이었다. 이 논문이 발표된 것이 1971년이었으니, 늦어도 터무니없이 늦었다. 그리고 이 글이 한국의 미술전문 잡지에 실린 것은 20년 뒤인 1990년 가을이었다.   한국 현대미술에서 주로 거론되는 여성미술가의 계보는 나혜석, 백남순, 박래현, 천경자, 김정숙, 이성자, 최욱경, 차학경, 윤석남 등으로 이어지고, 지금은 남자작가보다 더 많은 젊은 여성작가들이 국제무대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어 기대를 모은다.   몇 년 사이 박래현, 최욱경 같은 중요한 여성작가의 대규모 회고전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이를 계기로 활발한 연구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잊혀진 여성작가들이 더 많을 것이다. 이런 작가들을 발굴해서 다시 평가하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다. 특히 미국 등 해외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절실하다. 우리 미주 한인사회에서도 훌륭한 작가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기 때문이다.   그런 공부 중의 하나로, 미국에서 배우고 활동한 여성미술가들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이들이 겪은 정신적 고뇌의 경험이 오늘의 미주 한인화가들에게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 대하는 낯선 현실, 생소한 가치관에 적응하려 애쓰는 한편으로, 강하게 저항하면서 자기정체성을 세우고 지켜가는 과정에서 겪는 아픔, 외로움, 어려움, 괴로움, 고뇌와 기쁨 등은 이론이 아닌 실전 경험에서 배워야 한다.   그런 점에서, 50대의 나이에 과감하게 미국에 와서 공부한 박래현, 미국 현대미술의 격동기를 직접 체험한 최욱경, 1.5세 작가 차학경 같은 여성미술가들을 깊게 공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 산책 예술계 여성 세계 여성 한국 현대미술 각론 연구가

2022-03-24

[문화 산책] ‘천천히 서두르라’

작은 거인, 침묵의 소리, 뜨거운 얼음… 이런 표현을 ‘형용모순(Oxymoron)’이라고 부른다. 상반된 어휘를 결합시켜 새로운 의미나 이미지를 빚어내는 수사법이다. 모순 어법 또는 역설적 표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옥시모론이란 낱말은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는데, 날카로운 예리한 저능아, 즉 ‘똑똑한 바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단어 자체에 이미 모순이 드러나 있다.   의식하지 않아서 그렇지 형용모순은 우리 생활에서 뜻밖에 많이 쓰이고 있다. 문학 작품에도 즐겨 등장한다. 예를 들면 빛나는 어둠, 눈 뜬 장님, 산송장, 소리 없는 아우성, 침묵을 듣는 이등 많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이순신 장군의 명언이나 “눈을 감아라, 그러면 보일 것이다”는 말도 모순 어법이다.   정치판에 형용모순이 등장하면 위험하다. 보수적 진보, 진보적 보수 따위의 말장난은 속임수다.   종교에서도 형용모순은 널리 쓰인다. 일상에 대한 각성의 장치다. 도를 도라 말할 수 있다면 그건 도가 아니다. 부처가 있으면 그냥 지나가고 부처가 없으면 더 냉큼 지나가라. 가난하고 비통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형용모순은 겉으로 보기에는 명백히 모순되고 부조리해 보이지만 깊이 생각하면 진실을 담고 있는 진술로, 일반적인 상식이나 논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식과 사고를 일깨워 주기 위해서도 사용된다.   내가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천천히 서두르라(Festina Lente)”라는 말도 형용모순이다. 라틴어 명언인데, 그리스 사람들에게도 널리 영향을 미친 가르침이라고 한다. 의미가 참 깊고 슬기로운 가르침이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우리 속담과 같은 가르침인데 실제 생활에서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젊은 시절부터 좌우명으로 삼아온 “게으르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라는 말과 “천천히 서두르라”라는 말을 기둥으로 삼으면 내 삶도 한결 든든해질 것 같다. 여기에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즉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하라”는 말을 더하면 금상첨화가 되겠다.   개인적인 이야기라서 송구스럽지만 나의 지난날을 되돌아 보면 지나치게 서두르는 바람에 망친 일이 너무도 많아 후회스럽다. 인생살이에서도 그랬고, 연극이나 글쓰기 같은 작업에서도 그랬다.   “천천히 서두르라”라는 말을 우리 생활에 적용시키면, ‘순발력과 지구력의 조화’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젊은 날에는 패기와 번뜩이는 순발력에 기대어 살 수 있지만 나이 들면 점점 어려워진다. 생각도 행동도 걸음도 느려진다. 그러니 끈기에 기댈 수밖에 없다.     매사에 진중하게 한 걸음 한 걸음… 하지만 느릿느릿 천천히 걷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 쉬엄쉬엄 차근차근 걷다 보면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새롭게 보인다. 서둘러 가야할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남보다 빨리 가야할 필요도 없다.   프리웨이를 달리다 보면, 뭐가 그리 급한지 요리조리 추월해가며 위험 운전하는 차를 자주 본다. 하지만 그렇게 무리를 해도 그다지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 같지도 않다. 서두르더라도 천천히 서두르는 것이 슬기롭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 산책 모순 어법 보수적 진보 고대 그리스어

2022-03-23

[문화 산책] ‘천천히 서두르라’

작은 거인, 침묵의 소리, 뜨거운 얼음… 이런 표현을 ‘형용모순(Oxymoron)’이라고 부른다. 상반된 어휘를 결합시켜 새로운 의미나 이미지를 빚어내는 수사법이다. 모순 어법 또는 역설적 표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옥시모론이란 낱말은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는데, 날카로운 예리한 저능아, 즉 ‘똑똑한 바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단어 자체에 이미 모순이 드러나 있다.   의식하지 않아서 그렇지 형용모순은 우리 생활에서 뜻밖에 많이 쓰이고 있다. 문학 작품에도 즐겨 등장한다. 예를 들면 빛나는 어둠, 눈 뜬 장님, 산송장, 소리 없는 아우성, 침묵을 듣는 이, 찬란한 슬픔, 달콤한 슬픔, 쾌락의 고통, 차가운 아름다움, 달콤한 이별, 강철로 된 무지개, 젊은 현자, 위대한 절망, 상처뿐인 영광, 조용한 시위, 네모난 동그라미 등 많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이순신 장군의 명언이나 “눈을 감아라, 그러면 보일 것이다”는 말도 모순 어법이다.   정치판에 형용모순이 등장하면 위험하다. 보수적 진보, 진보적 보수 따위의 말장난은 속임수다. 하긴 ‘정직한 정치인’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다. 80년 광주를 상징하는 ‘시민군’이라는 말은 어떤가? 시민과 군인?   종교에서도 형용모순은 널리 쓰인다. 일상에 대한 각성의 장치다. 도를 도라 말할 수 있다면 그건 도가 아니다. 부처가 있으면 그냥 지나가고 부처가 없으면 더 냉큼 지나가라. 가난하고 비통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형용모순은 겉으로 보기에는 명백히 모순되고 부조리해 보이지만 깊이 생각하면 진실을 담고 있는 진술로, 일반적인 상식이나 논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식과 사고를 일깨워 주기 위해서도 사용된다.   내가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천천히 서두르라(Festina Lente)”라는 말도 형용모순이다. 라틴어 명언인데, 그리스 사람들에게도 널리 영향을 미친 가르침이라고 한다. 의미가 참 깊고 슬기로운 가르침이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우리 속담과 같은 가르침인데 실제 생활에서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젊은 시절부터 좌우명으로 삼아온 “게으르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라는 말과 “천천히 서두르라”라는 말을 기둥으로 삼으면 내 삶도 한결 든든해질 것 같다. 여기에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즉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하라”는 말을 더하면 금상첨화가 되겠다.   개인적인 이야기라서 송구스럽지만 나의 지난날을 되돌아 보면 지나치게 서두르는 바람에 망친 일이 너무도 많아 후회스럽다. 인생살이에서도 그랬고, 연극이나 글쓰기 같은 작업에서도 그랬다. 예를 들어 급하게 책을 내놓고는 늘 후회막급이었다. 성급하게 서둘러서 제대로 되는 일은 없다. 모든 일이 다 그런 것 같다. “급하다고 바늘 허리 매서 쓸 수는 없다”는 옛 말씀이 꼭 맞다.   “천천히 서두르라”라는 말을 우리 생활에 적용시키면, ‘순발력과 지구력의 조화’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젊은 날에는 패기와 번뜩이는 순발력에 기대어 살 수 있지만 나이 들면 점점 어려워진다. 생각도 행동도 걸음도 느려진다. 그러니 끈기에 기댈 수밖에 없다.     매사에 진중하게 한 걸음 한 걸음… 하지만 느릿느릿 천천히 걷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 쉬엄쉬엄 차근차근 걷다 보면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새롭게 보인다. 서둘러 가야할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남보다 빨리 가야할 필요도 없다.   프리웨이를 달리다 보면, 뭐가 그리 급한지 요리조리 추월해가며 위험 운전하는 차를 자주 본다. 하지만 그렇게 무리를 해도 그다지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 같지도 않다. 서두르더라도 천천히 서두르는 것이 슬기롭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 산책 모순 어법 보수적 진보 고대 그리스어

2022-03-17

[문화 산책] 자유인 이어령의 창조적 생각

 ‘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이어령 선생은 여러 면에서 시대를 앞서가는 지성인, 무엇보다도 창의력에 빛나는 지성인이었다.   요새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참 많고, 이들 ‘스타 지식인’의 영향력도 상당하지만 그중의 으뜸은 단연 이어령 교수였다. 말도 참 잘하고 글솜씨 빼어나고 생각도 깊고 근본적이다. 무엇보다도 새롭고 신선해서 매력적이다. 젊은이들보다 훨씬 젊은 청년이었다.   말을 잘 한다는 것은 말을 많이 하거나 아무 말이나 마구 한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말을 잘 한다는 것은 알아듣기 쉽고, 재미있어서 오래 기억에 남고, 본질의 핵심을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하는 내용을 정확하고 깊게 이해해야 하고, 속에 든 것이 많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듣는 사람의 눈높이에 맞추는 진심 어린 배려심이다.   그런 점에서 이어령 선생은 단연 탁월하다. 꼭 알맞은 비유와 예시를 활용하여 사물과 진리의 핵심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매우 어렵고 까다로운 논리도 아주 쉽고 명쾌하게 설명하는 능력은 단연 뛰어나다. ‘언어의 마술사’라는 칭호가 잘 어울렸다.   더욱 소중한 것은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것들에서 사물의 본질을 짚어내 앞날 위한 방향을 제시하는 재능은 정말 탁월하고 소중하다. 축소지향의 일본인, 가위바위보 미학, 보자기론, 생명경제론, 디지로그 등등… 참으로 참신하고 기발한 발상이다.   세상을 떠나기 전, 죽음을 앞두고 절실하게 토해낸 말들을 인터뷰 형식으로 모은 ‘이어령의 80년 생각’이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등의 책에 그런 창의적 생각이 가득하다. 특히 죽음에 대한 생각, 죽음을 기다리며 탄생의 신비를 이야기하는 통찰력은 인간 존재에 대해 깊게 생각하도록 이끌어준다. 죽음이 생의 한가운데 있다는 가르침을 준다.   이어령 선생의 통찰력은 알아듣기 쉽다. 예를 들자면,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를 뱀과 도마뱀에 비유해서 설명하는 내용 같은 것은 절묘하다. 이 우주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즉 입자와 파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디지털은 셀 수 있게 분할이 되어 있어 계량화된 수치 즉 입자이고, 아날로그는 연속된 흐름 즉 파장이라는 설명이다.   “더 쉽게 얘기해볼까. 산동네 위의 집이라도 올라가는 방법이 다르지. 언덕으로 올라가면 동선이 죽 이어져서 흐르니 그건 아날로그야. 계단으로 올라가면 정확한 계단의 숫자가 나오니 그건 디지털이네. 만약 언덕과 계단이 동시에 있다면 그게 디지로그야.”(‘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중에서)   이어령 선생의 평생 목마른 사람들을 위해 우물 파는 일에 외롭게 앞장서온 치열한 도전정신, 쓰고 싶은 글을 쓰기 위해서 병원 치료를 거부하는 고집 등은 우리 시대 참 스승의 모습을 행동과 실천으로 보여줬다.   특히 서양문명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의 해답을 동양과 한국의 생각과 철학에서 찾는 지혜는 대단히 소중하다. 이런 지혜는 인문학의 기본자세인 것은 물론이고, 예술가들이 꼭 배워야 할 교훈으로 여겨진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지침으로 삼아야 할 가르침이다. 예를 들어 88서울올림픽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굴렁쇠 굴리는 소년이 보여준 침묵의 미학 같은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막다른 골목에서 돌파구를 찾는 서양 문화가 동양 예술의 미학에 주목하는 추세가 강해지는 요즈음 이어령 선생이 남긴 창의적인 시각은 더욱 소중하게 빛을 발할 것이다.   고인의 뒤를 이어 지혜의 우물을 팔 사람은 누구일까?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 산책 이어령 자유 이어령 선생 창조적 생각 생각 죽음

2022-03-01

[문화 산책] 나성의 ‘낭만시대’가 그립다

예술 동네에는 수많은 낭만적 신화, 전설이 전해온다. 그런 신화, 전설을 주제로 한 매력적 문학작품이나 영화도 많다.   20세기 전반 파리의 분위기가 대표적인 예다. 여러 분야 예술가들의 천국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디아스포라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어우러지며 현대예술의 새로운 세계를 힘차게 열어갔다. 그 엄청난 창조의 원동력은 문인, 화가, 연극인, 음악가 등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이 적극적으로 어울리면서 서로 소통하고 격려하고 자극하고 배우는 열린 풍토에서 나온 것이다. 그저 술 마시고 취해서 떠들어대는 낭만에 그치지 않는, 아주 바람직한 어울림이다.     그런 창조적이고 낭만적인 소통이 부럽다. 숱한 전설의 예술가들이 이때 탄생했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중요한 ‘이즘(-ism)’과 운동들이 이 무렵에 이루어져 현대예술의 골격이 형성되었다. 로트렉, 세잔, 피카소, 마티스, 루오, 샤갈, 모딜리아니, 아폴리네르, 장 콕도… 후기인상파, 야수파, 입체파, 표현주의, 상징주의, 다다, 초현실주의, 미래파….   한국전쟁 직후 명동의 분위기도 그런 낭만시대였다고 전해진다. 파리도 그렇고, 명동도 그렇고, 참혹한 전쟁의 폐허, 가난의 틈바귀를 뚫고 창조의 꽃이 활짝 피어났으니 한층 더 신비롭다.   우리 이민사회에도 그런 창조적 낭만시대가 있었는가? 되돌아보니 우리 나성골에도 한때나마 그 비슷한 좋은 시절이 잠깐 있었다. 그런 낭만시대가 길지 못했던 것이 안타깝다.   1984년 LA올림픽을 전후로 한 80년대가 그런 시대였다. 미술가, 문인, 연극인, 음악인들이 흥겹게 어울리면서 젊은이들의 극단이 발족하고 소극장이 문을 열고, 미주한국문인협회를 비롯한 문인단체들이 발족해 문학행사를 열고 책을 발간하고, 전시회, 연극 공연, 음악회 등이 활발하게 열렸다.   그처럼 신바람 나는 어울림의 구심점은 나성골 한인마을 터줏대감인 화가 김봉태 선생이 운영하는 ‘갤러리 스코프’였다. 갤러리는 사람들이 오다가다 들르기 쉬운 한인마을 편리한 곳에 있었다. 그렇게 들러서 이야기꽃을 피웠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밥 먹고 한 잔 하는 모임으로 이어지곤 했다.   당시 자주 모이던 단골 술집은 3가의 동래파전, 6가의 야시, 그공간, 웨스턴 길의 이모집 등으로 해 저물어 출출해져서 한 바퀴 돌면 어디선가는 반드시 아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정도였다. 아무도 못 만나도, 아무데서나 한 잔 하고 있노라면 누군가가 나타나곤 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시절이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마셔댈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누군가 슬그머니 술값을 내주고 가는 고마운 어른들이 있던 좋은 시절이었다.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그 당시 자주 술값을 내주던 분에게 감사한다.   즐겁게 먹고 마시고 떠들어대고, 들어서 괴롭고 불러서 목 아픈 노래를 신나게 불러대며 놀다 보면, 진지하고 건설적인 이야기가 나오고 그것이 멋지게 실천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전시회 오프닝 날, 음악회나 연극 공연이 있는 날, 문학행사나 출판기념회가 열리는 저녁 등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모여들어 떠들썩했다. 그렇게 나성 한인문화는 골격이 잡히고, 익어갔다. 감히 나성 낭만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가끔씩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술타령이 그리운 것이 아니라, 여러 분야 예술가들이 어울리고 소통하며 만들어내던 창조적 열기가 그리운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데 지금은 왜 그런 어울림이 안 되는 걸까? 코로나 핑계는 그만 대야겠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 산책 낭만시대 나성 창조적 낭만시대 나성골 한인마을 우리 나성골

2022-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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